설교말씀

주일, 하나님의 도구 후새 (삼하 16:15-23) 고택원 목사 1-13-2019

운영자2019.01.13 15:40조회 수 5254댓글 0

    • 글자 크기

 

하나님의 도구 후새

삼하 16:15-27 

 

한국 역사를 보면 삼국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반란이 일어난 횟수가 약 50여회 됩니다. 내란 변란 민란 쿠테타.

그런데 성공한 사례는 약 10회 정도 되고 40여회는 실패했습니다.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보면 918년 왕건 반정, 궁예를 몰아내고 태봉이라는 국호를 고려 세움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 멸망, 1392년에 조선 건국.

1398년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 방석 죽이고 왕이 됨.

중종반정, 인조 반정., 5,16 혁명, 12,12 사건, 등은 성공한 예.

실패, 만적의 난 삼별초의 난, 이괄의 난, 홍경래의 난, 전봉준의 동학민란, 갑신정변, 임오군란.

성공과 실패는 아주 작은 데서 판가름 나는 것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 왕을 반역한 압살롬은 드디어 반역에 성공한 듯 보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다윗은 예루살렘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고

압살롬은 다윗왕이 포기하고 떠난 예루살렘 성에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입성하게 됩니다.

다윗 왕은 아들 압살롬과 피흘리는 전쟁을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아들에게 예루살렘 왕궁을 빼앗기고 피난을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

그래서 다윗은 따르는 신하들과 백성들과 함께 처량한 모습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덕분에 압살롬은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점령했다는 것은 사실 나라를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의 들어오기 전에 이미 다윗 왕이 성을 버리고 피난을 갔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 그는 이미 승리했다는 자심감에 넘쳤습니다.

더구나 당시 최고의 전략가인 아히도벨이 곁에 있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압살롬과 ...... 특별히 아히도벨이 언급 된 것은 그가 압살롬에게 모략을 제시하는 중요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 절은 15장 끝절인 37절과 흡사한 내용입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내용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아히도벨과 함께 들어간 것. 그리고 16장 앞부분은 다윗이 피난가다가 시바를 만나고 시므이에게 저주를 당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에 압살롬은 거기서 후새를 만나게 되고 아히도벨에게 계략을 펼칠 것을 요구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세 사람 후새, 아히도벨 압살롬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들을 다루시는가를 알고자 합니다.

사람이 행동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중국 서유기란 책에 보면 주인공 손오공이 비상한 재주를 가진 원숭이였는데

천계에서 못된 짓을 많이 하고 지상으로 도망쳤는데 옥황상제가 석가여래에게 손오공을 붙잡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손오공은 석가여래 앞에서도 재주를 뽐내며 멀리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수천리를 날아 도망쳤는데 알고보니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순종하게 됩니다.

사람은 모두가 자기 재주를 뽐내며 살고 있지만 실상 하나님의 손 바닥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 이사야 49:16에 보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I have engraved you on the palms of my hands.

네 이름을 손바닥에 새겼다가 아니라 너를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손 바닥에 새겨진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를 보기 원하시면 언제든지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손바닥만 펴시면 됩니다.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말씀인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1. 후새가 압살롬에게 위장 항복합니다.

 

15-16절 압살롬보다 한 발 앞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후새가 압살롬에게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를 부르며 나아갑니다.

압살롬은 의아해하며 묻습니다.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

다윗의 절친한 자였던 네가 어떻게 다윗의 적인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다윗의 막역한 친구였던 네가 나에게로 와서 협력하는 것이 다윗의 신하된 자로서 합당한 일이냐는 것입니다.

너는 배신자가 아니냐 하는 질문입니다. 후새가 정말 자기에게 항복하는 자인지, 거짓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말입니다.

이에 . 후새의 변명 18-19

후새는 목숨을 건 모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거짓으로 항복하는 것이 발각되면 즉시 처형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압살롬을 왕으로 택했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 역시 압살롬을 왕으로 택했노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김 같이 이제는 왕을 섬길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압살롬을 아예 왕으로 호칭했습니다. 이것은 압살롬과 모든 사람들이 듣기에 압살롬의 정권을 합법적인 정권으로 인정하는 말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을 정당화 하고 압살롬의 정권이 정통성을 가진 정권임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당시 압살롬은 다윗의 왕자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자였습니다.

그러니 왕위를 계승할 0순위 왕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왕이 되어야 하고 자기는 전에 다윗 왕을 섬김 같이 압살롬 왕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후새의 진심은 압살롬을 향하여 너는 아버지를 반역한 반란자다.

나는 너를 패하게 하기 위하여 위장으로 항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아닌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다.  하는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자기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 속 뜻을 숨겨야 했기 때문에 거짓으로 압살롬을 치켜세운 것입니다.

후새의 말을 들은 압살롬은 더 이상 후새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후새의 말처럼 이제 하나님이 자기를 왕으로 택하시고 백성들도 자기를 왕으로 택했다는 착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를 반역함으로 정통성에 큰 문제가 있는 압살롬에게 후새의 말은 굉장한 힘을 실어주는 말이었습니다.

다윗의 막역한 친구였던 후새가 다윗을 버리고 자기에게 와서 하나님이 당신을 택했기에 이제 나는 당신을 왕으로 섬기겠습니다. 했을 때

압살롬은 기분이 매우 흐뭇했을 것입니다.

이제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이 불의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명분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불법이 아니라 합법적인 일이고 정당한 일로 인정해 주는 후새가 고맙기 그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후새를 신임하게 되고 가까이 곁에 두게 됩니다.

최고의 모략가인 아히도벨이 자기 휘하에 있고 다윗의 친구였던 후새도 항복해 왔으니

압살롬은 무서울게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후새는 다윗의 친구일 뿐 아니라 사실은 다윗의 정치적 고문이었고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을 들은 후에 후새의 모략도 듣자고 했는데 그만큼 후새도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새가 자기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말을 들었을 때 압살롬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힘과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지혜를 가진 아히도벨 조차도 후새의 거짓 항복을 의심하지 않은 것을 보면

당시의 모든 상황이 다윗에게는 불리했고 압살롬에게는 유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후새는 다윗을 위해 적진에 홀로 뛰어 들어간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었고 목숨을 걸고 다윗을 위해 충성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친구 다윗의 벗이라는 명칭이 정말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새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다윗이 아히도벨의 모략을 폐할 수 없었고 압살롬의 반역을 평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후새가 다윗을 맞으러 와서 함께 피난 길에 동행하기를 원했을 때 다윗은 후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5:33-34 네가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어떻게 다윗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있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하나님께 짧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다윗이 그 기도를 마친 후에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찾아 왔습니다.

다윗은 바로 후새가 하나님이 보낸 사람임을 알아챘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아히도벨의 모략을 파할 사람임을 알아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있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후새가 자신의 의지로 다윗을 찾아온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보내신 자였습니다.

지금은 패배자로 쫓기는 다윗이었지만 다윗을 돕는 자로 하나님이 마련해 놓은 사람이 후새였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던 하나님은 비록 지금은 쫓기는 몸이었지만 다윗을 이기게 하기 위해서 후새를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후새는 다윗과 함께 피난가기를 원했지만 다윗은 그를 압살롬에게 위장 항복하게 보냈습니다.

그렇게 보낸 것 역시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정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 (잠 16:9)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보내주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나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실패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만 서 있다면 일시적으로 고난을 당할 수는 있어도 결코 실패자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도 후새 같은 사람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하나님은 가장 선한 길, 가장 좋은 길을 예배비 놓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계략을 가르쳐 줍니다.

 

20절 “압살롬에게 이르되.....

압살롬은 아히도벨에게 탈취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계략을 묻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그의 부친 다윗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일은 아주 패역한 짓입니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가장 파렴치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모략을 행하게 했을까요?

아히도벨이 이러한 모략을 내놓은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① 다윗의 폐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압살롬의 왕권을 완전히 굳히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풍습 가운데 왕위를 찬탈한 자들이 자기의 왕권을 겉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

전 왕의 후궁들을 취해 동침하는 것은 보편적인 관례였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부왕 다윗의 후처를 취함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이제 나 압살롬이다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아가 반역에 실패한 후에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가 다윗왕을 섬기던 아비삭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 달라고 한 일을 기억합니다.

그 때 밧세바는 별 일 아니라고생각하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사실을 말하면서

아도니아의 소원대로 아비삭을 아도니아의 아내로 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말을 듣고는 조금 전까지의 어머니에게 하던 부드러운 태도가 살벌하게 변하면서

어머니에게 왜 아도니아를 위해서 아내만 구하십니까? 그는 나의 형이니 그를 위해서 왕권도 구하옵소서 하고는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아가 이런 말을 하였은 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아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는 부하 브나야를 보내어 아도니아를 쳐죽이게 했습니다.

아도니아가 아비삭을 아내로 맞이하려 한 것은 왕권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왕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바로 왕권의 획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② 다윗과 압살롬 사이의 부자 관계를 완전히 끊어 놓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첩들과 동침한다면 이미 부자지정은 되돌릴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압살롬의 반역에 동참한 자들에게 이제 압살롬과 다윗의 관계는 끝났다.

다윗 왕이 압살롬을 미워할테니 이제 죽기살기로 싸우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는 것. 부자의 관계는 인간이 끊을 수 없는 것인데

아히도벨은 이렇게 악한 방법으로 부자지간의 관계를 끊어놓으려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압살롬을 위해서도 자신의 권세를 위해서도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도서 10:8에 보면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26:27에도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고 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함정을 팠지만 결국에는 자기가 거기에 빠져 죽게 됩니다.

악인의 길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③ 또 한 가지 이것은 반역에 가담한 사람들의 염려도 없애는 결과

지금은 다윗과 압살롬이 전쟁을 하고 있지만 혹 나중에라도 압살롬과 다윗이 화해라도 한다면

자기들은 모두 반역자로 처단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압살롬이 그런 패역한 짓을 한다면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할 일은 영원히 있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자신들이 반역자로 몰려 처단 당할 그런 염려를 씻어내는 일이 된다는 것

④ 한 가지 더 아히도벨이 이런 반 인륜적인 악행을 하게 한 데는 아히도벨 개인적인 원한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삼하 15:12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길로 사람

삼하 11:3에 보면 다윗이 부하들에게 밧세바가 누구인가 알아보라고 지시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라고 보고

엘리암이 누구? 삼하 23:34에 보면,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밧세바는 엘리암의 딸 그러면 밧세바는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의 딸입니다.

아히도벨의 손녀입니다. 우리는 왜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했을까 성경이 말씀하지 않음

그런데 여기서 유추해 볼 수. 다윗이 자기의 손녀를 강탈하고 남편 우리아를 죽이고 나중에 아내로 빼앗은 행위를 보면서

원한을 품고 있다가 기회가 오자 다윗에게 복수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아히도벨의 계략은 분명히 사악한 것이다.

율법은 네 아비의 아내와 통간하지 말라고 아비의 아내는 어머니 뻘, 근친상간의 무서운 죄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사실

아히도벨은 다윗을 철저하게 배신한 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버린 사람.

하나님의 율법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3절 아히도벨의 계락은 뛰어난 것, 그대로 행하면 압살롬에게 유리한 것이란 말

그가 다윗을 위해서 베풀 때는 다윗에게 유리하고 압살롬을 위해서 할 때는 그에게 유리한 것.

그런데 다윗을 위해서 계략을 베풀 때는 선인을 위해서 하는 선한 일

압살롬을 위해서 계략을 베풀 때는 그 계략이 아무리 좋아도 악인을 위한 악한 일 결국 아히도벨은 악한 계략을 가르쳐 준 것.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해롭게 하는 계락이기에 그것 자체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 패망의 길을 걸어가는 것 나중에 아히도벨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자의 종말이 어떤지를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압살롬은 악인입니다. 그 악인을 돕는 자는 악인처럼 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성경 시 1:1 말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

의인은 시냇가에 심을 나무처럼,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후새와 아히도벨에게 그대로 적용된 말씀 후새는 의로운 자로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은 악인의 꾀를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심판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3. 압살롬의 행동

 

22절.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백주에 부왕의 후궁을 취하고 동침을 합니다..

사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 된 일입니다.

12;11-12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사람들이 네 아내들가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그대로 성취,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

여기 옥상에 장막을 치니 11:2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

다윗이 최초 범죄가 시작된 곳 바로 그 자리에서 아들이 자기의 아내들과 동침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럴지라도 압살롬의 죄가 면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적어도 그것이 율법을 어기는 일이기에 거절했어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넘어서는 안되는 한계선이 있는데 그것은 한계선을 넘는 일이었습니다.

짐승이 아니라면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짐승보다 못한 짓도 서슴없이 행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가 아니고 타인의 아내였다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성을 공격해서 점령한 상태라면 얼마든지 용인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의 아내들과 동침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아내들에게 죄를 짓는 행동인 동시에 아버지께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며

나아가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 패역한 죄를 짓는 못된 행위입니다.

이것은 그 꾀를 알려준 아히도벨이나 그것을 실행한 압살롬이 하나님 앞에서 망할 수 밖에 없는 짓이었습니다.

망하는 사람과 흥하는 사람은 모두 그렇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행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무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무례하지 않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라면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다니엘의 행위가 왕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기는 했지만 하나님 앞에는 옳은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의 생명을 보호하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왕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왕에게는 무례했지만

그들은 하나님 앞에는 의로웠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풀무불 속에서도 건져주신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계략이 압살롬에는 절대 유리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패역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위해서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이고 후새는 다윗을 위해서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가 저들을 사용했는가?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흥하게 하려고 쓰임 받았지만 결국 망하는 길로 인도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쓰임 받은 것이 아니라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후새는 다윗을 흥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든지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사탄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목적으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사용되어지는 도구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여 나를 주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사용해 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던 프란시스 처럼

“하나님이여 나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간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글자 크기
주일, 하나님이 정하신 일 (삼하 17:1-14) 고택원 목사 1-20-2019 (by 운영자) 주일, 1-6-2019 장래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길 (딤전 6:17-19) 고택원 목사 (by 운영자)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8 주일, 압살롬의 죽음과 다윗의 통곡 (삼하 18:1-33) 고택원 목사 2-3-2019 운영자 2019.02.03 836
437 주일, 의인의 형통과 악인의 멸망 (삼하 17:15-29) 고택원 목사 1-27-2019 운영자 2019.01.28 829
436 주일, 하나님이 정하신 일 (삼하 17:1-14) 고택원 목사 1-20-2019 운영자 2019.01.21 887
주일, 하나님의 도구 후새 (삼하 16:15-23) 고택원 목사 1-13-2019 운영자 2019.01.13 5254
434 주일, 1-6-2019 장래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길 (딤전 6:17-19) 고택원 목사 운영자 2019.01.06 946
433 주일, 예수님이 치유하십니다. (마태 8:14-17) 12-30-2018 고택원 목사 운영자 2018.12.30 901
432 성탄주일, 주님 앞에 엎드려 (마 2:1-12) 12-23-2018 고택원 목사 운영자 2018.12.23 936
431 수요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눅 16:1-9) 12-19-2018 문성재 목사 운영자 2018.12.23 890
430 주일, 예수님의 계보 (마 1:1-25) 12-16-2018 고택원 목사 운영자 2018.12.16 934
429 주일, 큰 일을 하려면 (사 6:1-8) 12-9-2018 김동관 목사(수원안디옥교회) 운영자 2018.12.14 1021
428 주일, 시련의 강을 건널 때 (삼하 16:1-14) 고택원 목사 12-2-2018 운영자 2018.12.02 1087
427 수요일, 교회의 파워를 세우라 (행 20-29-32) 조심연 목사 11-28-2018 운영자 2018.12.02 949
426 주일, 하나님을 신뢰하라 (삼하 15:24-37) 11-25-2018 고택원 목사 운영자 2018.11.25 1118
425 추수감사주일, 다니엘의 감사 (단 6:1-10) 11-18-2018 고택원 목사 운영자 2018.11.18 1092
424 수요일,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2) 이승남 목사 11-14-2018 운영자 2018.11.17 1683
423 주일, 심은 대로 거둡니다. (갈 6:7-9) 고택원 목사 11-11-2018 운영자 2018.11.11 1101
422 주일, 압살롬의 반역 (삼하 15:1-23) 고택원 목사 11-4-2018 운영자 2018.11.04 1106
421 주일, 압살롬을 향한 다윗의 마음 (삼하 14:1-24) 고택원 목사 10-28-2018 운영자 2018.10.28 1109
420 수, 인생여정의 결산 (전 12:9-14) 김원구 목사(서울산성교회 담임) 10-10-2018 운영자 2018.10.22 1060
419 2017-4-23 당신은 어떤 자아상을 갖고 사는가? 고택원 목사 (인천송월교회에서 설교) 운영자 2018.10.22 957
이전 1 2 3 4 5 6 7 8 9 10... 24다음
첨부 (0)
rhwlsghkcocndgus XE1.9.7 GARDEN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