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종순일 목사의 빚 탕감 잔치 옮겨온 글 11-16-2015

운영자2015.11.16 12:10조회 수 2573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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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순일 목사의 빚 탕감잔치                                                                                   글- 이덕주 교수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해방 전만 해도 세례 받은 기념으로 뭔가를 행하는 전통이 있었다. 세례를 받고 정식 교인이 된 기념으로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기증하거나 예배당 마당에 나무를 심기도 했다. 세례를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하고 이를 기념하는 흔적을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선교 초기에 세례를 받으면서 ‘이름을 바꾼’ 교인들이 있었다.

예수 믿고 이름 바꾼 사람들

홍의 마을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1897년 어간이다. 마을의 서당 훈장이 이웃의 서사면 다리목(지금 교산) 마을에서 복음을 접하고 돌아와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서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홍의교회의 출발이다. 훈장의 전도를 받고 믿기로 결심한 홍의 마을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면서 개명(改名)하기로 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세례 받는 것은 거듭난 증거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주듯,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새 이름을 짓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신생(新生)과 중생(重生)의 표시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돌림자를 쓰기로 했다. “우리가 마을에서 처음 믿었고 한 날 한 시에 함께 믿어 한 형제가 되었으니 한 일(一) 자로 돌림자를 쓰자.”

성은 부모님이 물려준 것이라 바꿀 수 없고,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한 일자로 통일했으니 가운데 자만 정하면 되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애(愛), 신(信), 능(能), 순(純), 충(忠), 봉(奉), 은(恩), 경(敬) 같은 글자를 적은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기도한 후에 하나씩 뽑았다. 그런 식으로 해서 홍의 마을에 처음 복음을 전한 훈장은 박능일(朴能一)이다. 김경일(金敬一), 권신일(權信一), 장양일(張良一), 주광일(朱光一) 등 홍의교회 개척 교인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명칭만 바꾼 게 아니라, 호적과 족보까지 새 이름으로 바꿨다. 그런데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다. 같은 집안의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가 같은 날 세례를 받은 것이다. 예외가 없었다. “육적으로 부모, 숙질 간이지만 영적으로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돌림자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부자와 숙질 간에 같은 돌림자를 쓰게 되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전통적으로 돌림자는 친족 간의 촌수와 항렬을 알려주는 단서였다. 상하의 서열이 분명해 ‘윗대’의 돌림자를 ‘아랫대’에서 쓸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질서가 교회에서 깨어진 것이다. 이처럼 파격적으로 이름을 바꾼 교인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절도, 촌수도 모르는 상것들”이라며 ‘검정개’(그때 교인들은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육적 질서’ 대신 ‘영적 질서’를 따르기로 한 교인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오히려 홍의 마을에서 시작된 개명 전통은 강화 전 지역으로 확산되어 선교 초기 ‘일’자 돌림으로 개명한 강화 일대 교인들은 60여 명에 달했다.

개명 교인들은 이름을 바꾼 만큼 신앙에서도 철저했다. 홍의교회 개척 교인 종순일(種純一)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종순일은 예수 믿기 전에 ‘마을 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재물에 여유가 있었다. 그는 세례를 받고 이름을 바꾼 후 교회 속장이 되어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하루는 마태복음 18장 23절 이하에 나오는 비유 말씀을 읽었다. 일만 달란트를 빚진 신하가 임금에게 빚을 탕감 받은 후 나가다가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을 만나 갚으라면서 감옥에 가뒀다.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이 화가 나서 빚 탕감을 취소하고 신하를 잡아다가 감옥에 가둬버린 이야기다.

이 구절을 읽은 종순일은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자신에게 돈을 빌려 간 마을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읽은 마태복음 말씀을 들려주었다. “오늘 내가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은 것은 일천만 냥 빚을 탕감 받은 것보다 크거늘, 여러분에게 일백 냥, 일천 냥을 빌려주고 그걸 받으려 한다면 이는 성경 말씀에 나오는 악한 종이라 할 것이요. 이 시간 후로 여러분이 갚을 빚은 없소.”

그는 문갑에서 빚 문서들을 꺼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 없앴다. 행여 빚 독촉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왔던 마을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요즘 없는 빚도 있다고 우겨서 남의 돈을 빼앗는 세상인데, 어찌하여 예수교 믿는 사람들은 자기 돈까지 버려가면서 남을 도우니 참 갸륵한 일이다.” 1900년 4월에 있었던 일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홍의 마을의 복음화는 급속하게 이뤄졌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종순일은 ‘부자 청년’에 대한 말씀(마 19:16∼30)을 읽은 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처분해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을 교회에 기부했다. 그리고 부인과 함께 고향을 떠나 전도길에 나섰다.

종순일은 전대도, 식량 주머니도 차지 않은 채 ‘가난한 전도자’가 되어 남이 가지 않는 강화 남부 길상면으로 가서 전도해 길직, 길촌, 온수, 선두, 넙성, 덕진 등지에 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석모도, 주문도, 영종도 같이 교통이 불편한 섬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하고 목회를 했다.

주문도의 빚 탕감 잔치

1917년 종순일은 감리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강화 남쪽 주문도 진촌교회(현 서도중앙교회)에 부임했다. 1893년 주문도에는 성공회 신부가 와서 처음 복음을 전했고, 1902년 김근영 전도사가 와서 감리 교회를 설립했는데, 주문도를 호령하던 ‘밀양 박씨 충헌공파’ 집안의 박두병·박순병 형제가 교회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진촌교회에 박두병·박순병과 같은 집안 사람으로 아버지가 박두병에게 ‘2,000원’(현 시가로 1억 원 정도)의 빚을 지고 별세해 고스란히 그 빛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가난한 교인이 있었다. 그는 작고한 부친의 빚을 갚기 위해 8년 동안 절약해 16원을 모았지만, 그런 식이라면 평생 갚을 수 없을 것은 분명했다. 어느 날 그는 교회 목사와 박두병·박순병 형제를 비롯해 박씨 문중 교인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여러 어르신, 아버님께서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 8년 동안 애썼지만 16원밖에 모으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제가 죽기 전에 빚을 다 갚지 못하게 될뿐더러 빚 때문에 도무지 제 맘이 편치 못해 기도도 할 수 없으니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순간 정적을 깬 사람은 종순일 목사였다. 그는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 18장 20절 이하 말씀을 읽고 나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고도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 주지 않은 신하가 받은 형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동생 박순병이 입을 열었다. “형님,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문제가 난 것도 하나님의 뜻인 듯합니다. 형님은 그 돈을 받지 않아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 않습니까? 받아야겠다는 형님 마음과 갚아야겠다는 저 사람의 근심이 서로 다르니 어찌 합심 기도가 되겠습니까? 기도 할 때에 서로 거리낌이 없어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박두병이 무릎을 치며 대답했다. “그럼세. 그렇게 함세. 자네 부친이 내게 진 빚은 아니 갚아도 되네.”다시 박순병이 이어 받았다. “형님이 2,000원 빚을 탕감해 주었으니, 저 사람의 부친이 내게 진 빚 60원을 어찌 받겠소? 나도 그 빚을 탕감해 주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감동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문도 사람들의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당시 섬 주민 전체 181호 중에 134호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니 주민의 75%가 교인이 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다. 면소재지인 주문도가 지금도 ‘술집과 다방이 없는’ 성역(聖域)으로 남게 된 데는 감동적인 복음의 역사가 크게 작용했다.

종순일 목사는 17년 전에 고향에서 가졌던 ‘빚잔치’ 연극을 목회자가 되어 주문도에서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그때 ‘빚잔치’의 주연 배우였던 그가 같은 내용의 ‘빚잔치’ 연극의 연출자가 되었다. 17년 전의 감동이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은혜는 은혜를 낳는 법이다. 그에게 ‘성자’ 목사라는 칭호가 붙여진 것은 당연하다.부유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예수를 믿으면서 이름을 바꾸고 마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주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전도자가 되어 ‘땅 끝’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데 일생을 바친 종순일 목사는 1926년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 후 주문도에서 조용한 말년을 보내다 별세했다.


   ( p. s.  종순일 목사님은 2남 1녀을 두었고 장녀 종보희(평양신학교 졸업) 장남 종명원 차남 종명준이었다. 종명준과 그의 부인( 인천 창녕교회의 반정순 권사였음)은 1남 6녀를 두었고 자녀들 모두 믿음 생활을 잘 하고 있으며  장녀 종광순은 현재 필라델피아 새한장로교회를 담임하는 고택원 목사의 사모이다. 고목사의 장녀(정한나)와 사위(정피터)는 둘다 Main Line Health Care의 내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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