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가 급정거를 한다. 옆 사람이 밀려와 내 발을 세게 밟는다. 아얏,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른다. 너무 아프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조심하지 않구.”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다. 그런데 그 때 그 사람이 말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그만 본의 아니게 선생님의 발을 밟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주의를 했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중히 사과를 한다. 그러면 화가 풀리면서“괜찮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뭐.” 한다.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그래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을 밟은 사람이 전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을 때는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남의 발을 그렇게 세게 밟고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니. 매너가 형편없는 놈이구먼.” 그래서 한 마디 한다. “여보슈, 남의 발을 그렇게 세게 밟고서 어떻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소.” 그 사람이 말한다. “내가 일부러 그랬소? 차가 급정거를 하니까 그랬지. 잘못은 운전사가 했으니 운전사에게 사과를 받으시죠.” 그러면 다툼이 생긴다. 뭐 이런 작자가 다 있어.하면서 식식 거리게 된다. 그 사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처지를 인정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할 때 생겨난다. 내가 상대의 발을 밟았으면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사랑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밟혀서 발이 아프더라도 상대가 사과하면 그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과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것은 사랑이 없는 마음이며 자기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남의 잘못을 이해하는 곳에 사랑과 용서가 있다. 많은 오해와 불신은 이해의 부족에서 생긴다. 부부간의 다툼도 알고 보면 이해의 부족에서 생긴다.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다툴 일도 그리 많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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