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 글자 크기

월드비전 우간다 트립 (4)

admin2014.04.18 15:07조회 수 1825댓글 0

우간다에 대한 영어 발음이 유간다라 현지인 안내자인 에스더에게 물어보니 우간다 인들도 

자기나라를 유간다로 발음한다는 것이었다. 한국말만 우간다인 것을 알았다.


우간다에서 가장 크다는 기적교회를 방문했다. 공식 영어 이름은 Miracle Centre Cathedral 이었다. 이 교회는 우간다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 했다. 현재 교인 수가 2만 명이라고 했다. 


담임 목사인 로버트 케인저 목사님은 45세인데 이 교회에 부임한 지 7년이 되었다고 했다. 

본당은 약 30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마침 담임 목사님이 계셔서 우리 일행이 

함께 만났다.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얼마 전에 집회 인도 차 한국에 다녀왔다고 하며 아주 반가워했다. 우리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자기 교회에서 그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한 적이 있다며 설교가 아주 파워가 있고 특히 치유의 은사가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한국 식당을 알아보니 아리랑이라는 곳이 있었다. 굉장히 큰 건물에 시설도 아주 잘해놓았다. 한인이 많은 필라델피아에도 그만큼 크고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한인 식당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인도 많지 않은 우간다에 이런 시설의 한식당이 있을까 의아했다. 손님도 별로 없었고 음식 맛도 우리에게는 별로 맞지 않았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같은 것을 주문했는데 밥이 네 그릇만 나왔다. 곧 나오려니 하고 기다렸는데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밥을 거의 다 먹을 때까지도 안 나와서 일부러 매니저를 찾아가 얘기 했더니 밥을 새로 하는 중이니 15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배가 고프기에 계속 기다렸는데 15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다시 매니저를 찾아가 말했더니 밥을 짓는 솥이 고장이 나서 밥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몇 사람은 결국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밥값은 다 받았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7불 정도였다. 우간다 노동자들이 하루 임금이 1불도 채 안 되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주인 부부는 출타중이라 없다고 했다. 아무리 보아도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식당 같지가 않았다. 


한국 사람이 두세 명 있는데 우리 일행을 보고도 전혀 반가워하는 표정이 없었다. 우리 일행의 일치된 결론은 이 식당은 이윤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경영되는 식당 같다는 것이었다. 우간다는 1963년에 남한, 북한과 동시에 수교를 맺은 나라다.


어젯밤에는 9시경부터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새벽 3시 경에 눈이 떠지더니 잠이 오지 않았다. 깼다 잤다 하면서 새벽 6시를 맞았다. 12일 월요일 아침 식사 후에 월드비전 우간다 

본부 사무실에 가서 직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직원들이 약 30 명 정도 되었다. 예배 후에 월드 비전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다. 


1986년에 시작된 월드비전 우간다는 현재 500여명의 스태프들이 우간다 전 지역에 흩어져 일하고 있다고 했다. 월드비전의 사업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거대하고 효과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현재 우간다가 안고 있는 세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첫째가 가난의 문제요 둘째가 분쟁의 문제, 그리고 셋째가 HIV/AIDS 문제였다. 현재 우간다의 국민 85%이상의 가정이 하루 미화 1달러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자의 1년 평균 수입이 270불 정도라고 한다. 우간다 북쪽 지방은 지금도 종족간의 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AIDS의 문제는 심각한 상태로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균을 갖고 있어 우간다 국민의 평균 수명은 47세 정도라고 한다


호텔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체크아웃하고는 다시 다른 월드비전 사업장으로 갔다. 포장도로로 1시간 가서 비포장도로를 따라 약 45분 걸려 도착한 곳은 Katagombe타운이었다. 비포장도로는 옛날 한국의 자갈길보다도 훨씬 운전하기 힘든 길이었다. 자갈이 없이 맨땅인데 좌우에 배수로가 없어서 길 한가운데가 줄이어 패어있는 길이었다. 


운전사 Gerald는 마치 곡예 하듯이 이리저리 피하면서 운전해갔고 우리들은 온몸이 좌우상하로 요동을 치며 앉아있어야 했다. 길 좌우에 있는 집들에서는 어른과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집의 크기는 두 세평 되는 집에서부터 제법 큰 집으로 천차만별이었다. 


흙벽돌로 된 집이 대부분이었고 붉은 벽돌집들도 더러 있었다. 카타곰베에 도착하니 월드비전 건물이 있었고 약 15명의 스태프들이 일하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이곳에서의 월드비전 사업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단순히 결연 아동들만을 케어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의 교육 보건 수입제고 농사 개량에 대한 전반적인 일들을 하고 있었다. ADP(Area Development Project) 사업을 통해 현지인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 


브리핑 후 월드비전 멤버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뷔페식으로 음식을 테이블 위에 진열해 놓고 개인이 접시에 담아 갖다 먹는 것이었는데 우리 한국인들에게 주식이 밥인 것처럼 이곳 주민들의 주식은 바나나를 으깨어 쌀가루와 섞어서 바나나 잎으로 싸서 떡처럼 찐 것이었다. 그것이 맨 앞에 놓여 있었다. 우리 한식 뷔페에서 밥솥이 맨 앞에 있는 것과 똑 같았다. 딱딱하게 굳어진 Mashed Potato 같았다. 밀을 으깨어 찐 것 같은 것, 고구마를 쪄서 잘라놓은 것, 감자를 까서 쪄 놓은 것 그리고 얌이라고 부르는 것, 닭고기 쇠고기(모두 질겨서 먹기가 힘들었다) 양배추 같은 것을 잘게 썰어 양념해놓은 것(베지터블이라고 불렀다.), 그 외 이름을 모르는 것 두어 가지가 있었다. 식탁에는 파인애플과 망고를 먹기 좋게 깎아 잘라놓은 것이 각각 통에 담겨 있었다. 음료수는 환타 미린다 펩시 그리고 병에 담겨있는 물이 역시 식탁에 놓여 있었다. 귀한 손님이 왔다고 최선을 다하여 준비한 것 같았다. 


밖에 나오자 주변에서 아이들이 수십 명이 몰려왔다. 그들은 “무중구 무중구”를 외치고 있었다. 무중구라는 말은 자기와 다른 피부를 가진 외국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순진무구하기만 했다. 눈망울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검은 피부지만 잘 생긴 아이들이 참 많았다. 저런 아이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이 많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식사 후에 로스안젤레스에 사는 노형건 집사님이 후원하고 있는 결연 아동인 앨리스 집을 방문했다. 노집사님은 LA에서 라디오 방송국 진행자로 사역하며 찬양 사역을 하고 있는 분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앨리스 엄마는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 입고 앨리스도 단정한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앨리스도 앨리스 엄마도 아주 예쁘고 착하게 생겼다. 곁에는 앨리스 동생 되는 아이들이 있었다. 알고 보니 앨리스는 일곱 살이었고 앨리스 엄마는 스물일곱 살인데 앨리스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쌍둥이가 둘씩 넷이었고 막내 동생이 있었다. 동생들은 옷을 거의 입지 못했고 신발도 없이 맨발이었다. 


앨리스 아빠는 일하러 나갔다는데 화장실을 파는 일을 한다고 했다 한 달 수입이 9불 정도라고 했다. 노형건 집사님은 앨리스를 만나 너무도 반가워하며 그를 안고 가지고 간 선물들을 주었다. 장난감, 카셋트와 자신이 직접 부른 찬양 테이프, 찬양 CD. 그리고 CD 플레이어. 베개, 공, 연필, 등등 잔뜩 주었다. 그리고 앨리스 안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같은 죄인 살리신)를 불렀다. 그 분의 찬양은 찬양 사역자답게 아주 감동적이고 은혜가 충만했다. 


우리는 그들이 사는 집을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모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문짝도 없는 문으로 들어서면 두세 평 되는 공간이 있었다. 흙바닥이었고 거기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대야 같은 것 두개와 솥 같은 것 하나가 전부였다. 그 왼쪽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어 들여다보니 거기가 잠자는 방이었다. 서너 평정도 되는 방이었다. 눕기도 빠듯한 엉성한 침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리고 침대를 제외한 공간은 머리맡으로 세 피트 옆으로 네 피트 정도였다. 그 한 방에 여덟 식구가 잔다는 것이다. 맨 땅바닥에는 담요 같은 것이 깔려 있었고 천정에 매어 있는 줄에는 옷이 몇 개 걸려 있었다. 


노형건 집사님은 앨리스를 안고 그 방 침대에 앉아서 이렇게 혼자 말을 했다. “이 방이 우리 예쁜 앨리스가 잠을 자는 방이래요.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이런 데서 잠을 자는 아이들이 없는데... 우리 예쁜 앨리스가 여기서 이 침대도 아니고 저 땅바닥에서 잠을 잔대요. 우리 예쁜 앨리스가요, 우리 예쁜 앨리스가요.”밖에 나오니 두 살 쯤 된 앨리스의 남자 동생 아이가 서 있는 채로 오줌을 싸서 오줌이 입고 입는 바지를 적시고 왼쪽 다리로 흘러 맨발을 적시고 땅으로 줄줄 흘러 내렸다. 그러나 누구도 그 애 옷을 벗기고 갈아입히려 하지 않았다. 


노집사님은 앨리스의 사는 형편을 보고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앨리스 한 사람만 돕던 것을 앨리스 형제 두 사람을 더 도와 세 사람을 돕겠다고 작정했다. 앨리스 아빠가 한 달에 버는 돈이 9불이라는 데 자기가 90불씩 지원하면 생활이 나아지지 않겠느냐며 그렇게 하겠다고 본부장님에게 말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모두는 받은 충격 때문에 한 동안 말들을 하지 못했다. 같은 사람인데 어째서 사는 것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스물일곱 살이라면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로 미래의 부푼 꿈에 젖어 있을 나이도 되는데 앨리스 엄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들까?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평안하기만 했다. 


근심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밝게 웃음 짓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 순진무구하기만 했다. 물론 내면에 고민되는 일이 당연히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시종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너무도 애틋했다. 삶의 환경은 열악해도 행복 지수는 문명사회에 사는 사람들보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더 높다고 하지 않는가? 행복은 물질문명과 정비례 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월드비전에서 하는 사업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교육을 위한 사업으로 학교를 운영하여 기독교 교육을 시키는 것이며 보건 사업으로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사업이다. 우간다 주민의 30%이상은 이미 죽음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농사 개량사업과 농가의 수입제고 사업이다. 수입제고 사업에 속하는 현지인 Farmer를 방문했다. 


45세라는 농장주인 남자는 처음에 월드비전에서 수탉 한 마리를 샀고 암탉 두 마리를 무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에 계란을 모아 30마리를 부화했는데 많이 죽고 열 마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단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더 많이 부화해서 길렀고 400마리까지 부화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작은 농장에는 오리, 염소, 닭, 개, 소 등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가축 우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소 한 마리는 18만 실링 정도란다. 미 달러와 우간다 실링의 환율이 1:1800이니 

미화로 소 한 마리에 100불정도 하는 셈이었다. 돼지는 절반의 가격인 50불 정도라고 한다. 이 농장의 일년 수입이 어느 정도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100만 실링 정도라고 한다. 미화 600불 정도였다. 노동자 평균 수입에 비하면 두 배가 더 되는 액수였다.


농장에서 나와 차로 10여분 걸려 월드비전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건물 벽에 HIV/AIDS를 주의하라는 글씨가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Respect children's rights(아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라)라는 문귀도 있었다. 


어제 만났던 앨리스를 다시 만났다. 그 아이가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앨리스는 어제 선물로 받은 카세프를 손에 들고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굉장히 부러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노형건 집사님은 앨리스를 다시 만난 것이 너무도 반가워서 내내 그를 안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앞 벽에 Pre-marital sex is risky.(결혼 전 섹스는 위험하다)라는 글이 불어 있었다. 이 학교의 학생 수는 500명 정도이며 한 반에 70-80명이 공부한다고 했다. 월드비전 본부에서 준비해온 선물인 학용품을 선생님들에게 전달했다. 


학생들은 에이즈 예방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것을 보여 주었고 밖에 뜰에 나가서 연극도 했는데 연극의 주제도 에이즈 문제였다. 이 나라에 에이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500여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갔다. 걸어서 10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풀이 길게 자라있는 넓은 풀밭이었다. 거기서 우리 일행과 섞어서 한 편에 열 명씩 축구 시합을 했다. 우리는 새 축구공을 몇 개 준비해 갔다. 아이들은 맨발로 차는데 드리볼도 잘하고 킥도 잘했다. 모두가 대단히 기뻐했다. 시합이 끝나고 축구공을 선물로 주니 모두가 환호한다. 끝나기 전에 내가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 축복 기도를 했다.

  • 0
  • 0
    • 글자 크기
월드비전 우간다 트립 (5) (by admin) 월드비전 우간다 트립 (3) (by admin)
admin (비회원)

댓글 달기 WYSIWYG 사용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정렬

검색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 월드비전 우간다 트립 (5) admin 2014.04.18 1808
월드비전 우간다 트립 (4) admin 2014.04.18 1825
3 월드비전 우간다 트립 (3) admin 2014.04.18 2815
2 월드비전 우간다 트립 (2) admin 2014.04.18 1496
1 월드비전 우간다 트립 (1) admin 2014.04.18 1764
정렬

검색

rhwlsghkcocndgus XE1.9.7 GARDEN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