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카사블랑카’ ‘가스등’ ‘잔다르크’ 등으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 배우 잉글리드 버그만(1915-1982)은 175cm의 큰 키와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뛰어난 연기로 1940년 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20대에 보았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내 생애 가장 감동을 받았던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최고의 명예와 인기와 부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에 반해
첫 남편과 딸을 버리고 유부남이었던 로셀리니와 결혼합니다.
그것은 당시에 엄청난 스캔들로 그녀는 할리우드로부터 퇴출을 당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감정은 모래성 같은 것이라 둘은 아이까지 있었지만 이혼하고 맙니다.
그 후에 연극 연출가와 세 번째 결혼을 했지만 그와도 이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67세 생일이던 1982년 8월 29일에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끝낸 후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인기가 절정일 때에도 생의 허무함을 토로하며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겉으로는 아무리 화려하게 보여도 진정한 만족이나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 또 한 여인이 있습니다. 세기의 연인이자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오드리 헵번(1929-1993).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 페어 레이디’ 등으로 유명했던 여인.
그녀는 벨기에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린 시절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그녀는 유니세프의 전신인 '유엔구제부흥사업국'를 만나
거기서 공급해주는 양식으로 꺼져가는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배우로서의 삶을 살다가 그 길을 접고
어린 시절 유니세프에게 받은 도움을 전 세계 어린이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합니다.
1988년, 유니세프의 국제 친선대사로 임명된 그녀는
어린이를 돕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800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소말리아.
이미 암 투병중인 몸으로 여정 내내 그녀는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정을 계속하며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어린이에게 아름다운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1993년 1월 20일, 그녀는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다웠던 생을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드리 헵번은 젊었을 때에는 공주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천사였다.’
그녀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기에
그녀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 25:40).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허무감이나 후회가 없습니다.
오직 충만한 기쁨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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