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한국인과 어머니 미국인 사이에서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한국 학교를 다닌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의 고향인 미국에 가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첫 등교하는 날, 그는 학교가 가까워지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김새는 미국 애들과 비슷하니까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은 없겠지만
한국에서 사는 동안 엄마랑 영어로 말은 했지만 영어를 공부하지 않았고
영어책을 읽을 줄 모르는데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첫 시간은 영어 단어 스펠링을 복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쪽 앞줄부터 시작한다.” 하시고는 “스프링”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맨 앞줄 아이가 일어나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S P R I N G”
“좋아, 다음은, 뉴스페이퍼” 그 옆에 있는 아이가 스펠링을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그는 스펠링을 공부한 적이 없어서 크게 당황했습니다.
“첫날부터 창피를 당하게 되었구나. 아 아 이를 어쩌지?”
계속 스펠링 테스트를 하던 선생님이 어느 순간 그와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그 때 “조셉 앞으로 나올 래” 하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얼굴이 빨개져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그에게 칠판 앞에 놓인 분필을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아아’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쉬운 단어도 쓸 줄 모르는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어제 얘기했지?. 오늘 우리 반에 새로 들어온 요셉인데
요셉은 한국에서 온 선교사님 자녀야.
요셉은 한국이란 곳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를 아주 잘 한단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시며 “요셉아, 선생님 이름을 한국말로 써볼래? 선생님 이름은 ‘샤프’야.” 하셨습니다.
한국말로 샤프를 쓰는 것 그것은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는 칠판에 한글로 ‘샤프’라고 적었습니다.
러자 ‘와 아~~’ 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터졌습니다.
그 아이들은 한국어를 처음 본 것입니다.
마치 요셉이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쓴 듯이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아이가 일어서더니 “요셉아, 내 이름도 한국말로 써줄래? 내 이름은 '토마스야.”
그는 ‘토마스’라고 칠판에 썼습니다.
“내 이름도 써줘, 나도, 나도... 나는 '메리'야. 나는 '수잔'이야.
그가 이름을 적을 때마다 아이들은 감탄하며 박수를 쳤고 교실 안은 난리가 났습니다.
영어 못하는 파란 눈을 가진 아이가 될 뻔했던 그를
샤프 선생님은 ‘한국어 즉 외국어를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 주셨고
처음 전학 온 그를 반에서 아이들의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셉은 자신감을 가진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는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아주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리고 훌륭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 수원에서 목회하고 있는 김장환 목사님의 아들 김요셉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사프 선생님을 만난 것이 그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인생은 만남에서 이루어집니다.
좋은 만남이 좋은 인생을 만듭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우리의 전 생애를 변화시킨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은 후 우리는 이 땅에만 소망을 두는 자들이 아니라
죽음 너머의 영원한 세계를 확신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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