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신앙을 가진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양장점에 데려가 값비싼 옷을 맞춰 주시던
그런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그녀의 삶은 순탄하기만 했습니다.
전통무용 특기생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대만국립예술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뽑혔습니다.
그때가 1980년대 초였습니다.
유학이 어려운 때였고 중화권 유학은 더더욱 드물었습니다.
유학 전 우연히 본 서울특별시립 가무단 공채에도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대만에 간 그녀는 뜻하지 않게 믿지 않는 중국인 청년의 청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신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그 청년은 그날로 교회에 출석했고 기독교인이 됐습니다.
양가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둘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불신자였던 시부모님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평안해졌고 핑크 빛 행복의 길이 펼쳐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런데다가 유방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나이 40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녀는 4년 동안 6번의 유방암 대수술과 8년 동안 주사와 약물로 항암치료를 받으며
암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절망에 빠져만 있지 않고
‘아시안 암 환우회’란 봉사단체를 만들어서 자신처럼 암을 선고받고 투병중인 환우와
그 가족들을 상담하고 복음을 전하고 용기를 주는 일을 했습니다.
환우회는 회원이 250명이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는 뇌종양이 발견 됐습니다.
그러나 수술하기엔 너무 위험해서 그저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망스런 상황이 겹쳤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는 대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사역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녀는 ‘손경미’ 사모입니다.
2012년에 그녀는 간증책 ‘당신에게 힘이 될께요’를 펴냈습니다.
그 책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커튼 뒤에 진짜 행복을 숨겨두셨습니다.
환우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다가 죽는다 해도 저는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그릇으로 사는 인생이 가장 행복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 아픈 이들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큰 고통을 겪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는 일에 생명을 쏟아 붓는 그 분의 모습은
분명 하나님이 세상에 보낸 천사의 모습 같습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싶으신가요?
생명이 있는 동안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그 분처럼
하나님이 이 땅에 살게 하시는 동안 값진 일을 위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람이 없나니"(요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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