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만남과 인연(因緣)을 꿈꾸며-강은교

admin2014.04.18 09:29조회 수 1210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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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경 낭송칼럼]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듯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때는 인적(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도 하는데 일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연을 짓고 살아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우리는 인연(因緣)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그 결과의 산출을 도와주는 간접적 원인이 되는 연(緣)을 합해서 인연(因緣)이라 부르는데, 모든 사물은 이 인연에 의해 생멸한다고 해석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흔히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러한 사람의 인연, 즉 사람의 연분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들 이야기한다. 이렇듯 하늘이 맺어 주는 귀한 인연, 즉 소중한 만남을 우리는 늘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귀한 인연으로 만나도 살다 보면, 이러한 인연의 소중함을 가끔 잊어버리는 듯 가벼이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있는데,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는 바로 이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시라 할 수 있다.

  만남에 대한 소망을 물과 불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 한 이 시는, 숱한 공기 속의 입자들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비로소 비로 내리는 것처럼, 숱한 마음이 모여 하늘에서 흐르는 빗방울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강한 만남의 바램과 인연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 우르르 우르르 비 오듯 소리로 흐른다면.

  -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이 시의 1,2연을 살펴보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그래서 대지를 적시고 이 세상의 가뭄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며 물이 되어 만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하는데,  여기서 물이란 생명력을 부여하는 실체로 인간의 메마른 삶의 고독까지 해소시켜주는 상징적 역할을 의미한다. 즉, 시인이 표현한 물은 '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의 상징인 것이다.

   - 그러나 지금 우리는 /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3연)            
   - 만리(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 저 불 지난 뒤에 / 흐르는 물로 만나자. (4연)
   -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 올때는 인적(人跡) 그친 /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5연)

   그런 반면 위에서 알 수 있듯,  3연에서는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며 물의 세계와 불의 세계를 대비시키고 있고, 4,5연에서는 저 불이 다 지난 다음에 흐르는 물이 되어서 만나자며 만남에 대한 강한 바램을 표현한다.
   즉,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태워 버릴 수 있는 불이 모든 것을 깨끗이 태우고 지나간 후에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흐르는 물로 만나자며, 저 불이 다 지난 다음에 흐르는 물이 되어서 만나자는, 만남에 대한 강한 바램을 표현함을 엿볼 수있다.

   이 시의 낭송을 대하다 보니, 지난 4월에 모 대학에서 초청 시낭송 특강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날 특강 과제중 하나였던 이 시를  낭송한 후에 시해설을 하면서, 강의 듣던 학생들과의 소중한 만남과 인연에 대한 감사함을 이야기 했었는데, 그 날 강의를 듣던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만남의 순간이지만 특별한 인연에 함께 감사하는 듯 진지하게 경청하던 모습이 떠올라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필자가 만일 낭송을 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런 순간을 맛보았겠는가. 이렇듯 낭송은 귀한 만남과 인연까지 주는 고마움이기도 하다. 때문에 낭송문학은 거부할 수 없는 행복한 장르인 것이다.
   
   사람의 인연 중엔 때로 득(得)이 되는 인연도 있고, 때론 독(毒)이 되는 인연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하늘이 정해주는 귀하고 값진 것이기에, 결국엔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을 늘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인연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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